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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논에물대기

노년

우렁군 2018. 8. 22. 06:54

아버지는 요즘 말로 '인싸'였던 분이다. 

그랬던 분이 나이가 먹을수록 점점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찾아올 사람이 없는 인생의 후반부는 어떠할까.


현재 아버지는 돈을 버시는 수단이 (내가 알기로는) 없다. 

돈이라는건 너무 많아도 곤란하지만(할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어도 참 난감하게 되는 미묘한 놈이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젊은시절은

두루두루 아는 지인들이 많았고 만나서는 항상 밥과 술을 샀다.

그러나 IMF가 찾아오면서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인싸'이셨던 아버지는 

사람들은 만나야하고, 현실은 잘 안풀리니 잊고 싶고, 돈은 없으니 

결국 귀결되는것은 술(소주)인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를 보면서 알콜이라는게 얼마나 사람을 망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나쁜 기억은 지금까지도 너무 선명하게 하나하나 기억이 난다.

한여름이라 해가 길던 1999년 여름, 오후6시쯤 술에 만취한 아버지를 당시 근처에 사시던 큰아버지가 차로 데려다주셨다. 

술이 떡이 되어 자기힘으로 내리지도 못하고 동네 논밭에 널부러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나는 혼자 지내는법을 빨리 배워야 하겠구나.'

'나중에 아버지가 잘되든 내가 잘되든 간에 혹시나 잘풀리더라도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이 되지는 않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중학교 이후로는 3~4주동안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궁금하다. 1년에 최소 5번이상을 3~4주동안 집을 안들어오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다 온건지... 

그러나 굳이 잘되지 않았던 일을 

굳이 지금 꺼내어 물어보는것도 예의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1년에 절반 이상은 학교가 끝나는 오후4시부터 잠들기전인 밤 10시 11시까지는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자의적으로 타의적으로든 혼자 덜 외롭게 지내는 법을 빨리 찾게 되었다.

(주로 책을 읽다던가, 인터넷 게임방송을 본다던가, 게임을 한다던가 등의 남들과 같이 하지 않아도 되고 

노년기가 되었을 때에도 계속 할 수 있는 것들)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지금 많이 외로워 보인다. 

아들인 너가 연락 자주자주 드리면 되는거 아니냐고 생각하실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구성원에서 당연하게 이루어졌어야 할 관계들이 구축되지 않았었던 관계에서

'너라도 연락을 자주 드려야지'라는 말을 블로그에서 내 글을 읽어보신 분이 나에게 한다면

나는 그 사람이 꼰대같게 느껴질 것 같다.

그 사람이 싫어질 것 같다.

그 말이 언어폭력처럼 느껴질 거 같다.

   


나도 나중에는 필연적으로 아버지처럼 홀로 노년을 맞게 될 것이다. 

나는 혼자 남겨졌을때의 외로움을 덜 고통스러워하기 위해

어릴때부터 계속해서 혼자 덜 외로움 느끼기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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